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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후기]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부자가 함께…기세문‧기혁 열사
[5‧18후기]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부자가 함께…기세문‧기혁 열사
  • 기범석 기자
  • 승인 2021.05.19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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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기세문 열사, 평생을 민족통일 위해 헌신…아들 기혁 열사, 군부독재 반대‧학원 민주화 투쟁

기세문 열사,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선고 후 15년 복역…기혁 열사, 전남대 의대 재학 중 무등산 바람재에서 시신으로 발견

[광주일등뉴스=기범석 기자]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기세문 열사와 기혁 열사 부자열사가 함께 묻혀있다.

학원 민주화 투쟁 중 1985년 무등산 바람재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기혁 열사가 1990년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된 후, 2020년 10월 평생을 통일운동에 헌신해온 아버지 기세문 열사가 돌아가신 후 이 묘역에 안장되면서 부자가 함께 민족민주열사에 함께 있게된 것이다.

고 기세문 선생은 1934년 광주 광산구 임곡동(성내)에서 태어나 임곡초등학교(22회) 졸업 후 광주사범 부설중학교를 거쳐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하던 중 통일운동에 나서 1956년 ‘조국평화통일동지회’를 조직하고 ‘평화통일선언문’을 발표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58년 출소 후 사회운동에 나섰고, 1968년 통일혁명당 호남지역조직 활동을 시작해 1971년 통일혁명당 재건사건으로 구속돼 15년 만인 1986년 출소했다. 출소 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와 범민련남측본부, 광주전남양심수 후원회, 통일의집 등에서 활동했고, 자연건강교실과 단식원을 개설, 운영하던 중 2018년 급격히 건강이 악화돼 투병생활을 하다 2020년 10월 21일 운명하셨다.

저서로 옥중시집 『꽃 안 핀 봄』(한울사, 2000), 『자연의 힘으로 병이 낫는다』(에디터, 2000), 등이 있고, 역서로 『러시아의 가정교육』, 『세계의 단식건강법』(일월서각, 1996) 등이 있다.

1965년 기세문 열사의 장남으로 출생한 아들 기혁 열사는 어릴 적 아버지가 통일혁명당 재건사건으로 복역한 가운데서도 광주 대동고를 졸업, 1984년 전남대 의대에 입학한 후 전두환 군부독재 반대 투쟁과 학원 민주화 투쟁을 열심히 펼쳤다.

당시 전남대 의대는 한 과목이라도 낙제 점수가 나오면 재시험 없이 무조건 낙제시키는 학칙을 운영했는데 기혁 열사는 반대 투쟁을 벌이던 중 1985년 1월 초 행방불명됐다가 같은 달 16일 무등산 바람재에서 차갑게 굳은 시신으로 발견돼, 이후 1990년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됐다.

그가 사망하자 학교 측은 학칙을 다시 고치고 유급생 46명을 구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 후 2008년 전남대에서는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2010년 진실화해위(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기혁 열사의 죽음에 대해 ‘진실 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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