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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가 기세문 선생 별세, 23일 민주사회장
통일운동가 기세문 선생 별세, 23일 민주사회장
  • 기범석 기자
  • 승인 2020.10.22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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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 10/23. 10시 구호전장례식장, 장지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

광주 광산구 임곡 출신 비전향장기수…아들 혁, 21세에 의문사

[광주일등뉴스=기범석 기자] 박정희 정권에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15년 옥고를 치룬 통일운동가로 비전향장기수인 기세문 범민련 남측 고문이 21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통일뉴스에 따르면, 고인의 빈소는 광주광역시 북구 구호전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22일 오후 8시 추도의 밤 행사를 가진 뒤 23일 오전 10시 발인해 오후 1시 30분께 아들이 먼저 묻힌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모셔질 예정이다.

고 기세문 선생은 1934년 광주 광산구 임곡동(성내)에서 태어나 임곡초등학교와 임곡중학교를 거쳐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생활을 하면서 통일운동에 나서 1956년 ‘조국평화통일동지회’를 조직하고 ‘평화통일선언문’을 발표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58년 출소 후 사회운동에 나섰고, 1968년 통일혁명당 호남지역조직 활동을 시작해 1971년 통일혁명당 재건사건으로 구속돼 15년 만인 1986년 출소했다. 출소 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와 범민련남측본부, 광주전남양심수 후원회, 통일의집 등에서 활동했고, 자연건강교실과 단식원을 개설, 운영하기도 했다.

저서로 옥중시집 『꽃 안 핀 봄』(한울사, 2000), 『자연의 힘으로 병이 낫는다』(에디터, 2000), 등이 있고, 역서로 『 러시아의 가정교육』, 『세계의 단식건강법』(일월서각, 1996) 등이 있다.

1965년 출생한 아들 혁은 어릴 적 아버지가 통일혁명당 재건사건으로 복역한 가운데서도 대동고를 졸업, 1984년 전남대 의대에 입학했다.

당시 전남대 의대는 한 과목이라도 낙제 점수가 나오면 재시험 없이 무조건 낙제시키는 학칙을 운영했는데 기혁 열사는 반대투쟁을 벌이던 중 1985년 1월 초 행방불명됐다가 같은 달 16일 무등산 중봉에서 차갑게 굳은 시신으로 발견돼,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됐다.

그가 사망하자 학교 측은 학칙을 다시 고치고 유급생 46명을 구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기세문 선생 민주사회장은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와 김정길 6‧15공동위광주본부 상임대표를 상임장례위원장으로 하는 ‘통일운동가 고 기세문 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가 구성돼 장례위원을 모집하고 있으며, 호상은 조대회 범민련광주전남연합 의장이 맡는다.

◇ 기세문 선생 주요 약력

1934년 광주 광산구 임곡동 출생(향년 86세)

1953년 광주사범학교 졸업. 교직생활

1956년 「조국평화통일동지회」조직, 「평화통일선언문」발표, 구속, 2년형

1961년 - 「민족자주통일중앙회의」대의원

             5․16 군사쿠데타로 피신, 연탄배달부와 청소부로 은신생활

1968년 - 통일 혁명당 호남지역조직

1971년 - 구속, 지법에서 사형선고, 대법에서 15년형 확정

1995년 - 통일 애국열사 장례식․범민련 관계로 구속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에서 항의, 집행유예

1996년 - 광주전남 양심수 후원회 회장

1999년 - 「통일의 집」(장기수 후원회) 운영위원장

2003년 - 백운산 전적비 사건으로 긴급체포, 집행유예

2004년 -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민족자주평화통일 광주전남회의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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