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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칼럼]이역만리에서 고국을 사랑한 사람
[강원구 칼럼]이역만리에서 고국을 사랑한 사람
  • 박부길 기자
  • 승인 2011.11.25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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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호남대 초빙교수. 한중문화교류회장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뜻이다. 은나라 말기의 사람인 강태공은 위수(渭水)에 사냥 나왔던 창(昌)을 만나 함께 은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웠다.

그 공로로 영구(營丘)라는 곳에 봉해졌다가 그곳에서 죽었지만, 그를 포함하여 5대손에 이르기까지 다 주나라의 수도인 호경(鎬京)에 와서 장례를 치렀다.

이를 두고 “음악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바를 즐기고, 예란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향하는 것은 인(仁)이다” 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외국에서 살게 되면 고국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재불(在佛) 여성 서지(書誌)학자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파리에서 88세로 타계했다.

192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진명여고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6ㆍ25전쟁 이후 유학비자를 받은 최초의 여성으로 소르본대에서 한국의 민속을 연구해 역사학 박사학위와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승인 이병도 교수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고서들을 약탈해 갔다는 얘기가 있는데 확인이 안 된다. 유학 가면 한 번 찾아 보라” 고 한 말을 가슴에 새겨 도서관ㆍ박물관 등을 뒤지고 다녔다.

암 치료를 위해 10개월 동안 귀국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한국 문화를 위해 헌신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던 그녀는 1972년 이 도서관이 소장한 한국 고서(古書) ‘직지심체요절(1377년 청주 흥덕사 인쇄)’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입증했다.

그 책은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 앞선 것으로 증명돼 우리 인쇄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에서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1979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서고에서 발견해 한국 학계에 알림으로써 국내 반환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외규장각 도서들은 프랑스와 오랜 줄다리기 협상 끝에 올해 5월 반환이 완료돼 그의 노력이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 그녀는 도서의 완전 반환이 아닌 영구 대여 형식에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지만 19세기 후반 국력이 쇠약했을 때 유린당했던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은 어느 정도 위안을 받았다.

프랑스 외교부에서 한국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찾아내는가 하면 50년 넘게 프랑스 신문이 게재한 한국 관련 기사를 스크랩했다. 그가 수집한 한국 관련 자료는 방대하였다.

미혼(未婚)이었던 그는 일생을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지켜내는 데 바쳤으나 수난도 따랐다. 프랑스 국적인 그는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한국에 알렸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반역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국립도서관을 그만둬야 했다.

말년에 한국으로부터 별다른 도움 없이 프랑스 정부의 연금으로 어렵게 생활했다. 병원 치료비가 모자라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연구자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한국인임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그녀가 고국의 따뜻함을 느낀 것은 역설적으로 병마(病魔) 때문이었다. 지난 2009년 귀국했던 그녀는 뜻밖의 직장암 선고를 받았다. 가족도 돈도 없이 막막했던 그녀의 사연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성원이 답지했다.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연구할 게 많아 프랑스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오로지 우리 고문서 찾기와 의미 밝히기에만 매달렸던 그녀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여 형식이었다. 그녀는 생전 "프랑스 법원도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했다는 부분을 인정한 만큼 대여라는 형식을 하루빨리 '반환'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그녀는 대한민국 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받았다. 태어난 자리로 돌아가려는 본능은 짐승이나 조류, 어류에도 있다. 인간은 수구초심의 행동이 강한 동물이다.

정부는 그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일은 잘 한 일이다. 정부는 앞으로 외국에 있는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11년 11월 25일 강원구 호남대 초빙교수. 한중문화교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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