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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임철진 광주서구청 민원봉사과장 ' 매화, 그리고 봄의 결실'
[기고문] 임철진 광주서구청 민원봉사과장 ' 매화, 그리고 봄의 결실'
  • 박부길 기자
  • 승인 2024.03.06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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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등뉴스=박부길 기자] 가장 아름다운 계절, ‘봄’이 오고있다. 계절은 어김없이 긴 겨울의 끝을 지나 따뜻한 봄으로 변화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이 지나고,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나니 얼었던 대지가 녹기 시작한다. 며칠 동안 봄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얼음으로 딱딱하게 굳었던 빗물은 땅의 이곳저곳을 적신다. 숲속 헐거벗은 나무들도 기지개를 켜고 가지마다 싹을 움트기 시작한다. 메말랐던 숲은 어딘가 모르게 싱그러운 기운을 띠면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광주 서구청 전경 (원 사진-임철진 서구청민원봉사과장)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 산문집에서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사람들이 가꾸는 꽃 뜰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이라는 사실이 놀랍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잡초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습니다”라고. 자연의 변화와 봄소식은 인간이 가꾸고 관리하는 곳이 아닌 멀리 떨어진 들판에서 소리 없이 봄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에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며칠 전 광주천을 걸었다. 영상 14도의 따스한 기온에 봄이 왔음을 체감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늘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설렘을 준다. 누구보다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꽃이 있다. 고결·충실·인내·맑은 마음 등의 꽃말을 지닌 ‘매화’다. 고운 꽃송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나무는 겨우내 언 땅에서 조금씩 물을 길어다 나무가지에 적시고, 줄기는 잠시 숨을 멈추고 꽃봉우리가 터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온몸으로 피어냈다. 그 얇디얇은 고운 꽃잎으로 매서운 혹한과 눈·서리를 이겨내며, 언 땅 위에 꽃을 피어내어 그 향기가 맑고 진하다. 매화의 향기는 ‘귀로 듣는 향기’라고 했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마음을 가다듬고 섬세하게 느껴야 제대로 매화 향기를 알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겨울 매화의 향기는 사람을 감싸고는 뼛속까지 싱그럽게 만든다고 했다. 그 향기가 진정 귀하게 느껴진다. 긴 추위를 이기고 눈속에 꽃을 피운다 하여 우리 조상들은 매화를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 지조와 절개의 표상으로 여겼다. 또한 난초, 대나무, 국화와 더불어 사군자(四君子)라 불릴 만큼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 온 꽃이다.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며 문인 신흠(申欽)이 지은 수필집 야언(野言)에서는 매화꽃 향기에 관한 글이 있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또한 ‘동천년로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제 가락을 간직하고)’,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이 변함없고)’,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를 낸다)’와 함께, 매화는 곧은 절개와 흐트러짐없는 지조를 강조했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근본을 일그러뜨리지않고 꼿꼿해야 한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절개와 지조는 사람이 지녀야 할 중요한 정신자세와 몸가짐임을 생각해 본다.

조선시대 선비들 중 대표적인 매화 사랑꾼은 무려 107편의 매화시를 남긴 퇴계 이황 선생이었다. 퇴계 선생은 심지어 마지막 유언조차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다고 하니 얼마나 매화 사랑이 지극했는지 알 수 있다. 천원권 지폐에 퇴계 선생의 초상과 함께 활짝 핀 매화 그림이 있는것도 그런 까닭이다.

옛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이육사 선생의 시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가 떠오른다. 이 시에서 매화는 일제 억압에도 사라지지 않는 선비정신, 그리고 민족의 정기와 광복의 기운을 나타내는 희망이었다.

매화는 꽃을 말할 때는 매화나무라 하고 열매를 말할 때는 매실나무라고 불린다. 꽃은 매화이고 열매는 매실이기 때문이다. 매화의 매(梅)는 나무(木) + 사람(人) + 어미(母)로 이루어졌는데, 매실의 신맛이 임신한 여성의 입덧에 효험이 있어 ‘어머니가 되는 나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단맛과 신맛이 조화된 매실은 대표적인 건강기능 식품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매실은 맛이 시고 독이없으며, 기를 내리고 가슴앓이를 없앤다. 또한 마음을 편하게 하고 갈증과 설사를 멈추게 하며, 근육과 맥박을 찾게 한다"고 하였다. 속을 편하게 해주는 민간요법으로 탁월한 효능이 있다.

어렸을 적 기억을 소환해 보면, 배가 아프고 속이 편하지 않은 날이면 어머님은 장강에 담아둔 매실엑기스 한국자를 떠서 물에 타 주셨다. 신맛이 진해서 어린아이의 입맛에는 맞지 않아 코를 막고 겨우 삼켰더니, 잠시 후 신통하게 뱃속이 편해졌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아내는 매실을 담갔다가 가족들의 소화제로 이용하고 있다.

올해는 35년 공직의 마무리를 해야하는 해다. 공직을 떠나야 할 시기가 되니 이런저런 생각에 착잡한 심경이지만 ‘매화’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힘든 일이 다가오면 차가운 겨울을 참아내고 꽃을 피워내는 매화꽃처럼 단아하게 마음을 헤아려 매화의 향기를 느끼는 섬세함으로 만날 것이다. 그 끝에 ‘매실’과 같은 결실이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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