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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호해야할 역사문화자원
우리가 보호해야할 역사문화자원
  • 조경륜 기자
  • 승인 2010.06.10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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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 ] 백양사법계석

1896년 옛 청나라의 사신을 맞이하였던 영은문 자리, 나라의 영구적 독립을 선언하기위해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문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아마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연히 ‘독립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입니다.

좌우의 백양사 법계석

그러나 이 독립문의 위치가 원래 처음 세워졌던 위치에서 약70m 옮겨졌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영은문 자리에 세워져 민족의 기상을 표현하려고 했던 독립문이 어떠한 연유로 옮겨지게 되었을까요? 혹 일제 강점기에 옮겨진 것일까요? 일제의 만행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사실 독립문은 1979년 성산대교를 개설하면서 원래의 자리로 옮겨지는 비운을 겪습니다. 문화재는 문화재가 있었던 원래에 자리에 있을 때 그 가치를 가지는 것이고 특히 독립문과 같은 역사적 의미를 가진 문화재의 경우는 더욱 더 그러하다고 생각됩니다.

▲ 서쪽 법계석

그러나 지금의 독립문은 70년대 말 문화재 보호보다는 개발논리에 밀려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역사문화자원 중 그 장소나 위치가 중요한 문화재가 있는데 백양사의 경우 백양사법계석을 들 수 있습니다.

▲ 동쪽 법계석

백양사법계석은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 앞 도로 좌우에 250cm 높이의 2기의 사각 석주 되어 있습니다. 법계란 불법을 범위를 말하는 것으로 백양사의 불법이 미치는 곳을 표시하는 표지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법계석 자리에는 장승이 서 있었는데 마을사람들과 백양사 스님들이 1924년 장승을 없애고 법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법계석은 동서로 세워져 있는데 서쪽의 법계에는 백양법계 갑자욕불일입석(白羊法界 甲子浴佛日立石), 암단천차로(嵒斷千差路), 강하긍주이불류(江河兢注而不流)가 새겨져 있고, 동쪽 법계에는 호남경승 불기이구오일년(湖南勝景 佛紀二九五一年), 시풍언악이상정(施風偃嶽而常靜), 서광조만기(舒光照萬機)란 명문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답니다.

백양법계 갑자년(1924년) 사월초파일 세움
바위가 천 갈래 길로 끊어지고
강은 다투어 흐르나 다다르면(바다에 이르면) 흐르지 않는다.

호남의 좋은 경치 불기2951년
바람이 불어와 산에 드리우니 언제나 고요하고
흩어지는 광명은 萬機(천하를 다스리는 모든 일)를 비춘다.

현재 백양사법계석은 좌우에 인도가 생기고 가운데는 포장도로가 지나가고 있어 처음 법계석을 세웠을 때 보다 편의를 위해 많은 변화되긴 했지만 다행이 그 위치가 변화되지는 않았습니다. 불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글을 음미해 보면 가슴에 청명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백양사법계석이 앞으로 몇 백 년이 지나도 지금의 자리에 잘 보전되길 기원해 봅니다.

국립내장장산국립공원 백암사무소 자원보전과 이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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