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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칼럼]주자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강원구 칼럼]주자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 박부길 기자
  • 승인 2018.02.06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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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항에서 무안공항으로 옮긴지 11년이 넘었지만, 중국으로 가는 항공이 없기 때문에 인천공항으로 가야했다. 1월 30일 5시에 출합해야 하기 때문에 전날부터 긴장 되어 한숨도 자지 못하였다. 인천공항은 복잡한 관계로 3시간 전에 도착하도록 되어 있다.

오전 9시 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전,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12시 10분 출발이 항공기 정비로 14시 40분에 출발한다는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출발하는 시간은 15시 10분에 출발하였으니, 3시간 늦게 출발하였다. 우리 지역에서 중국으로 가는 항공기가 없어 너무나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항주에 도착하여 수속하고 밖에 나오니 오후 5시(우리 시간 6시)가 넘었다. 요즈음 한국이나 중국이 엄청 추워 어제도 황산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막혔는데, 만일 막히면 항주에서 숙박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 상황이었다. 특이 날이 어두워지면 잘 모르니 서두르자고 하였다. 우리에게 운이 좋게 갈 수 있었으나, 다음 날은 항주-황산구간은 막히고 말았다.

항주를 출발하여 3시간이면 도착하는데 4시간에야 황산시내에 도착하였다. 황산시(黃山市)는 옛날에는 신안현(新安縣), 그 뒤에 휘주(徽州)로 바뀌었는데, 휘주를 공자의 고향처럼 정주궐리(程朱闕里)라 부른다. 그것은 정호 정이선생과 주자선생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신안이란 곳이 남아 있는데, 그곳이 바로 신안강(新安江)이다.

신안강에는 1천년 전부터 해외로 나가는 부두가 있다. 아마도 주잠선생 등 8학사가 이곳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신안강 주변으로 둔계(屯溪)의 옛거리와 여양(黎陽)의 신거리가 있다.

둔계는 옛날부터 정호. 정이. 주자선생의 영향으로 문방사보(文房四寶)가 발달하였다. 휘주의 먹(墨), 흡연의 벼루(硯), 선성의 종이(紙), 호주의 붓(筆)으로 유명한데, 바로 이 곳에서 많이 팔리고 있다.

여양은 신안강을 건너 옛 건물을 새롭게 만들어 젊은이 거리를 만들어져 있다. 이곳 휘주 향현관에는 주자선생을 비롯한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선생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자세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주자선생의 신안주씨의 시조와 정호. 정이선생의 신안정씨 시조의 묘가 있는 황돈촌(篁墩村)에 갔다. 작년에 갔을 때, 작년 8월부터 정화사업을 한다기에 가 보니, 사무실에 정호. 정이. 주자선생에 대한 것과 신안주씨와 신안정씨에 대한 글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곳에서 마침 주자선생 후손을 만나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연락하여 관장을 만나게 되고 관장과 함께 선물도 주었다. 황산박물관에도 주자선생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저녁에 황산에서 하는 쇼가 있는데, 옛날 휘주의 역사와 주자선생에 대한 내용이 있지만, 이번에는 보지 못했다. 13살이 되면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공부의 길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장사의 길로 나가게 되었다. 13살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지만, 엄마들이 회초리를 들고 쫓아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황산박물관에는 주자선생의 시조 1세 주사고, 2세 주고료, 3세 주정휴, 4세 주소원, 5세 주유보, 6세 주진, 7세 주현, 8세 주삼, 9세 주송, 10세 주희까지 만들어져 있다.

주자선생의 아버지 주송선생이 태어나고,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촌인 무원현으로 갔다. 이곳은 주자선생이 자주 들렸으며, 주자기념관과 주자선생의 이름인 주희의 이름을 따 ‘희원(熹園)’, ‘주자예원(朱子豫園)’이 있는 곳이다. 주자문화연구회 홍현발(洪玄發)회장, 무원현여유경제발전센터 홍일여(洪日如) 부주임이 나와서 우리와 간담회를 가졌다.

입구에 문공궐리(文公闕里)라고 써있으며, 들어서면 존경각의 누각이 아름답게 맞이하고 있고, 선조들의 사당, 공자를 모시는 곳에 성학창명(聖學昌明)의 현판이 걸려 있으며, 주자선생이 강학하는 모습이 있다.

주돈이. 정호. 정이를 모시는 곳에 그들의 사상이 한 뿌리라는 염락동원(濂洛同源) 현판이 걸려 있다. 자양서원이 있으며, 유명한 벼루가 많이 진열되어 있다. 아래에는 호수가 만들어져 있고, 정원은 5천평 정도로 몇 백년된 나무가 있어 아름다운 정원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입장료는 60원인에 우리 돈으로 1만원이 넘는다.

희원에는 신안주씨 2세인 주고료가 무원으로 이사왔다. 그래서 이곳은 주고료를 1세로 하여 9세 주자선생까지 만들어져 있다. 무원현은 옛날 휘주부에 속해 있었는데, 강서성으로 편입되어 지금은 휘주와는 거리를 두는 것 같다. 이곳 희원은 처음에는 주가장(朱家庄)으로 불리어졌다. 주자선생의 2세조 3세조가 계속 살았던 곳으로 1989년에 정비하기 시작하여 2013년 11월 27일에 정식 개원되었다.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으로 가기 위해 중국에서 도자기로 가장 유명한 경덕진(景德鎭)을 지나가게 되었다. 광주차이나센터를 개관할 때 경덕진 외사판공실 정철(鄭鐵) 부주임을 만나 광주 서호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곳에 그를 만나 도자기박물관을 관람하고 백록동서원으로 갔다.

마침 백록동서원에는 한국인교수가 있는데 고려대학 출신으로 전병욱교수다. 양주재교수, 양설빙교수들이 전북 순창군 혼몽재 학생들이 10여명 공부하러 와있는 중이라 이곳에 와 있었다. 작년에 훈몽재 김충호선생께서 주자묘에 왔을 때, 남창대학 교수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이곳에서 남창대학 강우철학연구소와 주자문화보존회가 자매결연을 하고 상호 토론을 많이 하였다. 백록동서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여산(廬山) 아래에 있다. 멀지 않는 곳에 이백의 시에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라는 여산폭포가 있다.

서원에는 주자선생의 동상과 주돈이선생, 왕양명선생 등의 비와 동상이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백록동규가 이곳에서 만들어진 역사적인 곳이며, 주자선생이 직접 쓴 명륜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제 중국에 주자선생의 성역화 사업이 곳곳에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앞장서서 주자묘를 성역화해야 할 것 같다.

2018년 2월 5일
姜元求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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