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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칼럼] 고려사관과 심청공원이 있는 영파(寧波)
[강원구 칼럼] 고려사관과 심청공원이 있는 영파(寧波)
  • 박부길 기자
  • 승인 2016.12.02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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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행정학박사
중국 4대 보살인 관음보살이 있는 보타산(普陀山)을 가게 되었다. 상해에서 출발하여 김구선생이 피난을 했던 가흥의 매만가와 남호과 해염의 재청별서와 36km인 항주만대교를 거쳐 영파(寧波)로 들어갔다.

영파는 도시 곳곳에서 ‘작은 홍콩’이라는 곳이다. 대륙의 홍콩이라는 영파는 항주만을 사이에 두고 상해와 마주보고 있는 항구로 당나라 때부터 유명한 무역항기도 했다. 옛날의 이름은 명주(明州)였는데, 명나라 시대에 들어와서 영파로 고쳤다. 그러나 명주를 잊지 않기 위해 영파 시내에 日湖와 月湖라는 호수가 있다.

영파는 편안할 녕(寧)에, 물결 파(波)자를 쓰는데, 파도도 잔잔하다는 뜻이다. 어원은 ‘해정즉파녕(海定則波寧: 바다가 안정되어 파도가 잔잔하다)’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옛날엔 이 항구를 통해 우리나라나 일본과의 무역이 활발했다.

영파는 송나라시대 고려와 많은 관계가 있어 지금도 그 옛날 의 ‘고려사관’이 있고, 시내 중앙에 천일광장이 있다. 구 건물들을 매입하여 화려한 도시로 탈바꿈시켰으며, 분수대는 싱가폴의 센토사섬 분수대와 비슷하다.

고려를 방문한 서긍(徐兢) 등 200여명은 이듬해 귀국 뒤에 고려도경(高麗圖經)이라는 책을 지어 황제에게 헌상한다. 이에 의하면 서긍 일행이 고려를 향해 당시 송나라 수도 개봉을 출발한 것은 1123년 3월 14일. 보통은 요동반도를 따라가는 육로를 택하지만 당시 금(金)이 한창 흥성하던 때라 해로를 이용했다. 이들을 태운 신주(神州)라는 배는 5월 26일 보타구 심가문(沈家門)을 출항해 6일 만에 소흑산도에 도착하고 서해 연안항로를 따라 계속 북상해 6월12일 예성항에 입항했다.

나주출신 최부(崔溥)선생이 1488년 제주에서 배를 타고 육지로 향하던 중 추자도 앞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14일간 표류하다가 음력 1월 16일 삼문현 우두외양(牛頭外洋)에 도착하였다.

최부선생 일행이 상륙하자, 마을 사람들이 나와 왜구로 오인 받아 죽게 되었다. 당시 명나라는 왜구가 나타나면 먼저 죽이고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최부선생은 “나는 조선인이니 관청에 알려주라”고 말하였다. 그는 조사과정에서 조선인임이 밝혀지자, 존경과 환대를 받게 되었다.

천동사(天童寺)라는 절은 고려 왕자 목연스님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백제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 영광군 법성포를 통하여 인도승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불교를 최초로 전한 곳이다. 영광군의 법성포(法聖浦)는 불교가 들어오는 포구라는 지명과, 불갑사(佛甲寺)라는 절이 있다.

천동사 입구에 들어가면, 입구가 멋있게 말들어져 있으며, 멀리 천불탑이 산중턱에 보인다. 입구에서 전동차를 타고 들어가는 고즈넉한 절이다. 다른 절처럼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관광객이 적지도 않는 아주 고풍스러운 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심청공원이 있는 보타산을 전에는 배를 타고 다녔는데, 지금은 영파에서 높고 긴 다리 3개를 지나면 섬이 나타난다. 보타산으로 가는 왼쪽으로 심청공원인 심원(沈院)이 있다. 큰 길에서 정원으로 500m 정도 걸어 들어가면 심원이란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져 있는데, 6천평 넓이에 여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중국 동진시대 백제에서 심청이 시집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심국공을 만나는 것, 효녀 심청이란 것들이 우리와 맞는 부분이어서 보타구와 곡성군이 자매결연이 맺은 지역이다.

보타산(普陀山)은 오대산. 아미산. 구화산에 이어 중국 불교의 4대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보타산은 주가첨(朱家尖)에서 다시 배를 10여분 타고 가야 도착한다. 보타산은 다른 지역의 산과는 다르다. 다른 산은 높은 산이지만, 이 곳은 섬에 불과하지만 산으로 부르고 있다.

불교의 전성기인 당나라 1214년 관음도량(觀音道場)으로 지정되었고, 한참 불교 전성기 산에는 3대 사찰, 88개 암자, 128개 모봉에 3000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한다. 보타산 풍경구는 총 면적 42k㎡이며,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길게 뻗어있고 백사장이 넓고 부드러우며 기이한 돌들이 천태만상을 이루고 동굴과 깊은 골짜기들이 절경을 이룬다.

2016. 12. 2 姜元求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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