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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칼럼]황제 유람 같은 金正日의 訪中
[강원구 칼럼]황제 유람 같은 金正日의 訪中
  • 박부길 기자
  • 승인 2011.05.27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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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장ㆍ호남대 초빙교수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대통령이나 수상이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처럼 해외 순방이나 출장을 다닌다면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공무 성격의 외국 방문이라기보다는 거의 황제의 유람 같은 일정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방문하면서 그는 대규모 수행원을 거느린 채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일 오전 흑룡강성 목단강(牡丹江)에서 북산공원과 경박호(鏡泊湖)의 항일 유적지를 잠깐 방문한 뒤 이튿날 오전 길림성 장춘(長春)에 도착할 때까지 특별열차에서 나오지 않았다.

21일 장춘에서는 오전에 자동차 회사를 잠깐 견학하고 오찬 연회를 가진 뒤 열차에 올라 이튿날 저녁까지 30시간을 특별열차를 타고 양주에 도착한 후 40여시간을 보내고, 북경으로 올라가 호금도(胡錦濤)를 만났다.

그의 방중 목적이 경제 원조 요청이라는 관측이 많다. 북의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 제재와 춘궁기가 겹쳐 식량난이 심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한가롭고 호화로운 일정을 보면서 누가 그런 긴박감을 느낄 수 있을까. 그를 수행하는 70여명의 수행원이 중국 측 파트너들과 분주히 정책 협상을 벌이는 등 업무를 처리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 등 국가 지도자가 외국을 방문하면 국내에서보다 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보통이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행사에 참가한다.

국익을 위해 국가의 세금으로 다니는 출장이기 때문이다. 국가지도자의 '세일즈 외교'가 미덕이 되는 것은 국제무대에서 영업사원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견제 받지 않는 독재자가 아니라면 도저히 짤 수 없는 그런 여정을 김 위원장은 즐기고 있다.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이런 실상을 안다면 심정이 어떨지 가슴이 막막하다.

양주(揚州)는 옛날에 광릉(廣陵), 계원(桂苑), 강도(江都), 한강(邗江) 등으로 불리어 지었다. 연화삼월하양주(煙花三月下揚州)란 시로 유명한 지역이다.

매년 양주는 4월에 축제를 열리고 있으며, 항주의 서호보다 아름다운 수서호(瘦西湖)가 있으며, 청나라 건륭황제가 6차례나 다녀간 곳으로 유명하다.

수서호는 양쪽에 수양버들이 늘어지게 있으며, 물위에는 처녀 뱃사공들이 양주의 민요를 부르면서 사람들을 끌고 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 ‘황제의 딸’이 이곳에서 촬영된 곳으로 유명하다.

옛날에 낚시를 즐겼던 조어대(釣魚臺)가 있고, 멀리 백탑(白塔)이 한 눈에 보이며, 아름다운 연화교(蓮花橋) 밑으로 배가 다니게 되어 있다. 양주를 나타내는 배경은 다름 아닌 호수 속에 있는 연화교이다.

양주 시내 한복판에 문창각(文昌閣)이라는 건물을 중앙으로 하여 발달했으며, 시내는 깨끗하고 잘 가꿔진 곳이며, 강택민(江澤民)의 고향이기도 하다.

수양제는 그가 만든 경항대운하를 따라 유람한 양주에 김정일이 유람하였다. 수양제는 고구려에 침략하였으나, 대패 당하고 난 후 신하 앞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는 약을 마시고 죽기를 바랬으나, 살수대첩에서 패한 우문술의 아들 우문화급(宇文化及)에 의해 목 졸려 죽었다.

최치원(崔致遠)선생은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합격하였고, 879년 황소의 난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이름을 남겼다. 최치원 선생이 고향을 그리워 지은 추야우중(秋夜雨中)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양주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도시이지만, 당나라시대만 해도 대단히 발달된 곳이다. 신라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한 곳이 양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이 조그만 도시로 전락된 내용이 ‘노양주(老揚州)’란 책을 보면, 철도를 놓는 것을 반대하고, 비행장을 밭으로 만들어 시끄러운 것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그럴 듯 했다.

신라시대 장보고(張保皐)장군이 신라방을 산동성 석도와 이곳 양주에도 설치하기도 했으나, 그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최치원선생의 기념관은 잘 만들어져 있다.

김정일이 그곳까지 갔으면 역사적인 유적지인 최치원선생의 기념관이라도 둘러보았어야 옳은 일이다.

2011년 5월 27일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장ㆍ호남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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