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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기황후는 공녀가 아니며, 고려귀족 출신이다”
“원나라 기황후는 공녀가 아니며, 고려귀족 출신이다”
  • 기범석 기자
  • 승인 2018.11.26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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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학의 대가 허흥식 박사, 연천문화원 주최 ‘기황후릉의 종합적 연구’ 학술회의에서 주장
"고려와 몽골의 상층신분 혼인이었으며 기황후 외에도 네 황후 더 있어"

[광주일등뉴스=기범석 기자] 중국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 원 순제의 황후이자 북원 소종의 모후인 기황후는 공녀(貢女)가 아니며, 고려귀족의 자제라는 주장이 나왔다.

▲ 학술회의가 끝난 후 토론자들과 행주기씨 종친들이 연천문화원 이준용 원장, 연천군의회 서희정 부의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허흥식 명예교수(사학 박사)는 11월 23일 경기도 연천문화원이 주최한 ‘기황후릉의 종합적 연구’ 학술회의 토론발표자로 나서 “기황후는 고려의 비천한 가문 출신이 아니라 고려 최고귀족 집안 출신이다”고 주장하고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는 혼인동맹이며, 혼인동맹은 고려와 몽골의 상층신분의 혼인이었다”면서 “몽골과 항전기간의 아녀자 약탈과 혼인동맹 이후의 동녀(童女)의 선발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기황후는 공녀가 아니며 조선조에서 명나라에 바쳤던 공녀를 고려에 소급적용한 잘못된 말이라며, 행주기씨는 고려시대 최고 귀족가문이었다는 허흥식 교수의 토론 발표 모습.

‘고려불교사연구’와 ‘한국중세불교사연구’의 저자인 허 교수는 또 “공녀(貢女)는 조선시대에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의 동녀(童女)는 이와 다르다”고 말하고 “원나라에는 기황후 이전에 왕황후와 김황후가 있었고, 기황후 뒤로 권황후와 노황후도 있다”고 밝혔다.

▲ 학술회의가 끝난 후 기념촬영을 하는 한국사 전공의 연천군의회 서희정 부의장(더불어민주당)과 연천문화원 이준용 원장.

한편, 연천문화원(원장 이준용)이 연천군 수레울아트홀에서 주최한 이날 ‘기황후릉의 종합적 연구’ 학술대회는 이준용 연천문화원장의 개회사에 이어 기연수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국제관계학 박사)외 기남용 기황후 추모위원장, 연천군의회 서희정 부의장의 축사가 있었다.

▲ 사회를 보는 공연예술원 박호남 원장, 바로 옆은 허흥식 교수, 서희정 부의장과 행주기씨대종중 기의서 문화이사의 모습도.

발표와 토론은 공연예술원 박호남 원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고고학-기황후릉의 역사고고학적 고찰), 허흥식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역사학-기황후릉의 조성시기와 회암사지 지공화상비), 정성권 단국대 초빙교수(미술사학-기황후릉 부근 출토 석상의 미술사적 해석)가 차례로 발표했다.

▲ 기남용 기황후추모위원장(왼쪽)과 행주기씨 대종중 자문위원인 기연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가 조유전 박사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이어 지정토론은 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전 선문대학교 대학원장·석좌교수)가 조유전 박사의 ‘기황후릉의 역사고고학적 연구방향’에 대한 토론을 하고, 박원길 칭기스칸연구센터 소장이 ‘기황후릉의 조성시기와 회암사지 지공화상비’ 에 대한 토론을, 손환일 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연구원이 전 기황후릉 출토석상의 미술사적 해석에 대한 열띤 토론을 했다.

▲ 열심히 필기하면서 학술대회 토론에 몰입하는 참석자 모습.

이준용 연천문화원장은 개회사에서 “기황후릉의 사실적 여부와 기황후의 역사적 재조명에 관한 학술회의를 실행에 옮기게 되어 감개 무량하다”면서 “조그마한 고려의 여인이 당시 세계를 정복했던 원나라의 90년 역사 중 1/3인 30년간 원나라를 좌지우지 했다는 것은 기황후만의 카리스마와 고려여인의 당찬 모습이 상상된다”며 “오늘의 학술회의를 통해 전(傳) 기황후릉터에서 전(傳)을 뺀 기황후릉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 기황후릉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상리 145번지(재궁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3년 11월 25일 연천군의 향토유적 제18호로 지정되었다.

▲ 발표자와 토론자가 나란히 앉아 지정토론이 진행되는 모습 - (오른쪽부터) 박원길 토론자와 허흥식 발표자, 이형구 토론자와 조유전 발표자, 손환일 토론자와 정성권 발표자.

[기황후릉 학술회의 이모저모]

▲ '기황후릉의 종합적 연구' 학술회의가 열리는 수레울아트홀 1층 로비 모습.
▲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기황후릉의 역사고고학적 고찰'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 조유전 소장의 발표에 몰입하는 참석자들 모습 - (앞줄 왼쪽부터) 기남용 기황후추모위원장, 기연수 한국외대 명예교수, 기길호 행주기씨 광주문중 전 회장, 서희정 연천군의회 부의장, 이준용 연천문화원장.
▲ '기황후릉의 역사고고학적 고찰에 들어가는 순간.
▲ 허흥식 교수의 기황후릉의 조성시기와 회암사지 지공화상비 발표 모습.
▲ 정성권 단국대 초빙교수가 '기황후릉 부근 출토 석상의 미술사적 해석'관한 발표를 하고 있다.
▲ 지정토론을 하고 있는 이형구 박사, 바로 옆은 발표자 조유전 소장.
▲ 행주기씨 광주문중 기길호 전 회장과 연천군의회 서희정 부의장, 연천문화원 이준용 원장이 토론발표에 열중하는 모습.
▲ 이형구 교수의 열띤 토론 모습.
▲ (앞줄 왼쪽부터) 기남용 기황후추모위원장, 기연수 한국외대 명예교수, 기길호 전 회장, 서희정 연천군의회 부의장, 기의서 행주기씨 대종중 문화이사, 이준용 연천문화원장.
▲ 학술대회 토론회 전경.
▲ 박원길 칭기스칸 연구센터 소장은 "공녀란 용어는 명나라 영락제 때 조선출신 권현비 때부터 등장하며, 공녀나 동녀는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고려사나 원사에는 '양가자제로 13세부터 16세 사이의 여자아이'란 뜻의 동녀, 처녀라는 용어만이 사용된다"면서, "기황후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은 그대로 제1차 지구촌제국이라는 대몽골제국의 역사인식과 직결되며, 이런 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기황후를 바라볼 경우 '세계를 제패한 고려미인의 꿈과 야망을 바라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 허흥식 박사가 "기황후는 공녀가 아니었고, 비천한 신분이 아니었으며 행주기씨는 고려 최고귀족이었다"며 "행주기씨도 고봉 기대승, 노사 기정진 선생만 숭상할 것이 아니라 기황후도 자랑스럽게 여겨야한다"고 일갈하고 있다.
▲ 대전대 서화문화연구수 손환일 연구원이 '기황후릉 부근출토 석상의 미술사적 해석'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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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황후가 시주한 불탑사-원당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는 행주기씨 대종중 기연수 자문위원(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이 고려사 연구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 서울 강남에서 수년 전에 귀농한 토지 관련 박사인 연천군민이 이러한 중요한 자리에 연천군수나 군청 관계자들이 아무도 안 왔다며 이들의 무관심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 행주기씨 대종중 기의서 문화이사가 기황후릉 연구와 발굴의 중요성에 대해 소신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연천군의회 서희정 부의장, 오른쪽은 연천문화원 이준용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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