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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칼럼] 강원구박사의 중국여행 23
[강원구 칼럼] 강원구박사의 중국여행 23
  • 박부길 기자
  • 승인 2018.08.09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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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무이정사(武夷精舍)

천유봉에 가는 길은 주자선생아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무이정사, 또는 무이서원으로 부른다. 요즈음 정비도 잘 했으며, 유리벽 안에 800년전 벽이 남아 았다. 그곳에 ‘태산에 공자가 나오고, 무이산에는 주자가 태어났다’라는 글구가 있다.

주자는 부친이 14세 사망하였지만, 18세 대과(大科) 급제하였다. 당시 평균 연령 35세에 합격하였으니 얼마나 천재였는가는 알 수 있다. 주자는 주자학을 집대성하여 중국 사상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무이정사내에 퇴계선생의 도산서원이 그려져 있다.

주자선생이 살았던 오부리(五夫里)에 가면 자양루가 있다. 이곳에 커다란 주자선생의 석상이 있다. 9개 계단은 9년간 벼슬하였고, 석상의 밑까지 1.4m는 14세에 공부를 시작했으며, 석상 높이는 71자로 71세까지 살았으며, 석상 둘레가 50m 인데, 이곳에서 50년간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석상 옆으로 아주 크게 주자묘(朱子廟)를 짓고, 앞에 넓은 연못을 만들기로 하고 땅을 구입해 두었다. 주자선생의 묘가 있는 건양구 황갱진에 가면, 10m 정도 되는 석상과 기념관을 짓고 있으며, 무덤은 돌로 만들어져, 잡초 하나 나지 않게 되어 있었다.

건양 시내 강물이 흐르는 곳에 고정서원(考亭書院)은 입구만 남아 있는데, 새로이 서원을 만들고 있었다. 그곳에서 주자선생이 1200년에 강의하다 돌아가셨는데, 전국에서 1000여명의 학자들이 몰려 장사를 지냈다고 적혀 있다. 풍수지리학자들이 주자선생의 묘가 용이 꿀틀거리는 용맥이라고 그려져 있고, 1999년 후손들이 세운 사원정(思源亭)과 한국 정주학회에서 만든 주부자림(朱夫子林)이란 비석에 세워져 있다.

대홍포차(大紅袍茶)

대홍포차가 있는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높다란 바위를 지나가야 한다. 이러한 바위 속에서 나는 차를 ‘무이암차’라 한다. 4km정도 들어가면 원조격인 대홍포차 나무가 나온다. 6그루가 있는데 지금은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보호수’로 보호받고 있다. 조상격인 1세 6그루가 있으며, 바로 옆에 2세 차나무가 있고, 주변에 3대, 4대, 5대 차나무가 계속 생산되고 있다.

대홍포(大紅袍)는 무이산에서 생산되며 ‘차중지성(茶中之聖)’으로 칭송된다. 세계 명차 중 으뜸이며 중국의 국보급 차인 대홍포는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무공해 지역인 무이산에서 생산되는 귀한 차이다. 예로부터 ‘차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무이산 풍치지구 구룡과 절벽에서 자라는 차이다.

대홍포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건륭황제가 우연히 무이산의 수려한 산세에 반해 대홍포차로 잔병을 치유하고, 이 차나무를 국가 보호 유물로 지정하면서 부터이다. 예부터 모두 황궁에 공납하는 궁정공품(宮廷貢品)이었다. 그래서 국보 대홍포(大紅袍)로도 불리기도 한다.

대홍포 전설은 어느 왕조 때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황실의 황후가 이상한 병에 걸린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황후는 위장이 붓고, 소화도 되지 않으며, 정신마저 흐릿해지는 특이한 병이 들었다. 황제는 어의를 데려오고, 도사를 시켜 묘약을 찾게 하였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황제는 겨울이 오면 용포(龍袍)로 그 차나무를 감싸게 하고, 두 명의 노인에게는 호수장군(護樹將軍)의 칭호를 주고 대대손손 그 직을 세습하면서 해마다 찻잎을 채취한 후 이를 잘 다듬어 황실에 올리도록 어명을 내렸다.

중국 국보 대홍포가 2005년 4월 4일 상해 국제차문화절 주관으로 열린 경매에서 20그램에 인민폐 18만 위안에 낙찰되어 새로운 경매 신기록을 세웠다.

중국 속의 유럽, 하문(厦門)

중국 속의 유럽이라면 단연 하문을 가리킨다. 하문으로 다니는 국제선이 있어 한국에 여행 오는 중국인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하문 공항의 이름은 고기(高崎) 공항으로 일본 이름 같이 보인다. 일본은 하문을 ‘아모이’라 부른다. 아모이라 부른 것은 여러 가지 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명을 딴 사세보(佐世保)로가 있으며, 사세보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하문에 도착하면 홍콩섬과 같은 하문섬이 있다. 하문섬 바로 옆에 작은 섬인 고랑서(鼓浪嶼)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서(島嶼)지방이라 말할 때, 도(島)는 큰 섬을 말하고, 서(嶼)는 작은 섬을 말한다.

하문은 아름다운 해변의 도시이지만, 일촉즉발(一觸卽發)하기 쉬운 국경의 도시이기도 하다. 하문에서 조금만 배를 타고 가면, 대만 땅인 금문도(金門島)가 나온다. 금문도 옆으로 5개의 조그만 섬이 있다.

북한에서 바라본다면 연평도와 같은 모양이며, 100여m 앞까지 갈 수 있다. 금문도에는 ‘삼민주의(三民主義)로 중국을 통일하자’라는 구호가 적혀 있고, 하문에는 ‘일국 이체제로 중국을 통일하자’라는 구호가 있다.

아름다운 해변가에 하문대학 건물이 보인다. 순환도로가 바닷가로 잘 이어져 있어 관광하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옛날의 포대(砲臺)가 있는데 이름은 호리산 포대다. 지금도 20여 개의 대포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문 시내는 중국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경이나 상해의 경우 큰 빌딩이나 깨끗한 곳이 많지만, 옛날의 지저분한 거리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하문은 그러한 곳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서양 문물의 보고 고랑서(鼓浪嶼)

고랑서란 글자를 보면 ‘북칠 고(鼓), 물결 랑(浪), 섬 서(嶼)’이다. 파도가 치면 북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고랑서’라 지었다고 한다. 고랑서를 가는 것은 싱가폴에서 센토사섬을 가는 것과 같이 배를 타면 5분이다.

하문은 아름다운 만(灣) 속의 섬이라면, 고랑서는 하문섬에 붙어 있는 위성섬이라면 알맞다. 서양식 건물이 즐비하고, 붉은색의 건물들이 많이 있다. 운남성 여강고성은 명청 시대의 거리라면, 고랑서 거리는 근대식 거리라고 생각하면 알맞을 것이다. 이곳에는 차량이 없다. 걸어 다니거나 조그만 전동차를 이용하여 다닐 수 있다. 전동차로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10여 분만 걸으면 될 거리이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고랑서에서 대표적인 관광 코스는 숙장원(菽庄園)과 일광암(日光岩)이다. 숙장원의 숙(菽)자는 ‘콩 숙’자이다. 콩과 보리를 잘 구별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숙맥(菽麥)’이라 부른다. 어째서 숙장원이라 부르는지는 몰라도 속에 들어가 보면 아름다운 바닷가를 끼고 돌면서 여러 가지 구경을 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 유명한 것은 피아노 박물관이다. 일광암은 오르기가 가파르지만 올라가면 하문 시내를 다 볼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일광암 건너편의 산봉우리까지 케이블카가 있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재미 역시 즐겁다.

2018년 8월 10일 강원구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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