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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칼럼] 강원구박사의 중국여행 22
[강원구 칼럼] 강원구박사의 중국여행 22
  • 박부길 기자
  • 승인 2018.08.06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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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東湖)와 고경루(顧景樓)

동호와 고경루는 임해시에 있는데, 원래 태주시의 중심은 임해시였다. 태주시에서 현급시에 가장 크고, 인구도 100만명이 넘는 도시이다. 이곳에는 항주 서호에 못지 않는 동호가 있다.

호수가 크지 않고 작지만, 호수 속에 있는 정자와 누각 등이 조화를 이루고 바로 위에 있는 척계광장군이 쌓은 장성(長城)과 고경루가 어울려 아주 아름다웠다. 고경루 입구에 웅진동남(雄鎭東南)이란 패방이 있고, 바로 옆에 박일파(薄一波: 보시라이 아버지)가 쓴 강남장성(江南長城) 민족괴보(民族瑰寶) 비가 있다.

계단이 가파르게 올라가면 왜구를 물리친 민족영웅 척계광장군의 동상이 있다. 그는 중국 역사상 10대 장군에 속하며, 산동성 봉래 출신이다. 봉래각 아래에도 척계광장군의 비가 있다. 고경루에 올라 바로 아래의 동호와 임해시가 한 눈에 바라 보이는데, 임해시 한국인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양가라는 옛거리도 유명하다. 한참 걸어가다 피곤하여 잠시 길 옆에 앉아 있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젊은 아주머니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들이 내 옆에 앉아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신선이 살고 있는 신선거(神仙居)

신선거에 도착하면 밤이 되지만, 처음에는 도로 정비가 되지 않아 들어가기가 불편하다. 장가계나 태항산에도 처음 들어갈 때는 많은 불편이 있었으나, 지금은 도로가 잘 정비 되어 있다. 밤이라 주변이 잘 보이지 않고, 호텔 시설이 좋지 않아 불편하였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주변 산을 보면 “내가 신선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비스러운 봉우리에 구름이 걷히었다가, 머무르고 다시 걷히고 반복되는 것이 신선이 사는 것인가 보다. 태항산(太行山) 같은 웅장함과 장가계의 귀곡잔도와 같은 낭떠러지나 계림 같은 기이함, 이백의 여산폭포시에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 생각날 정도도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황산을 신비스러운 산으로 생각하여 많이 찾는 것도 구름이 많이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며, 새벽 일찍 나가도 아침 해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신선거도 이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선거는 아직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이제 한참 개발 중에 있다.

중국에 여행하다 보면 중국은 참으로 복 받은 나라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중국인들이 우리를 보고 놀라면서 “어떻게 여기를 알고 왔는가?” 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부르지만, 중국은 금수중화(錦繡中華)라 부르는데, 과연 그러할 만하다. 신선이 사는 동네 신서거는 앞으로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몰릴 것이라 생각이 든다.

신선거는 북쪽으로 들어가서 남쪽으로 내려 올 수 있는데, 북쪽으로 들어가서 케이블카 있는 데까지 갔다가 밖으로 나와서, 남쪽 문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경치를 보면, 가장 아름답다.

그런데 북쪽으로 올라가서 남쪽으로 걸어갈 때, 약 4km 정도 걸어가서, 남쪽 지역에 도착하여도 너무 피곤하여 아름다운 경치를 보아도 그 맛을 모를 수 있다.

차(茶)의 고장 장흥현(長興縣)

전라남도에 장흥군이 있고, 중국 절강성 호주시에 장흥현이 있다. 글자도 똑 같이 장흥(長興)이다. 장흥을 보통 ‘자흥’이라고 말하는데 중국의 장흥은 ‘창싱’으로 발음해야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차싱’으로 발음하는 것을 보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차의 성인(聖人)인 육우(陸羽)가 살았던 곳으로 떡차를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장흥에도 떡차인 청태전이 유명하다. ‘차의 역사는 중국에 있다’라고 하는 것처럼, 차의 기원은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육우가 쓴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적인 차경에는 '차를 마시는 것은 신농씨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공(周公)에게서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인류 최초로 차를 마신 사람은 기원전 2,737년에 염제 신농씨. 그는 인류 최초의 차인(茶人)으로 옛날 전설상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한 사람이다.

신농씨는 산과 들에 나는 여러 식물을 직접 먹어 보다가 독초에 중독되어 차나무 밑에서 쉬면서 끙끙 앓고 있다가 떨어진 나뭇잎을 씹어 먹자 정신이 들었다는 설화가 있다. 또한 백성들에게 먹을 물을 끓여 마시라는 칙령을 내린 뒤 변경 지방을 순시하던 중 하인이 끓이던 물에 우연히 나뭇잎이 떨어져 물의 색깔이 변하면서 좋은 향기가 나 맛본 뒤 차를 마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육우는 당나라 현종 733년에 태어나 3세 때 버려져 용개사 직지선사 밑에서 자랐다. 직지선사는 자신의 성인 육(陸)씨와 역서의 점괘와 연결시켜 고아의 이름을 ‘육우(陸羽)’라고 지어 주었다. 어린 육우는 절에서 불경 공부 외에 주지스님의 차 끓이는 일도 맡아 했다.

그는 12세가 되던 해에 절에서 뛰쳐나와 극단에 들어가 단역배우로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얼굴은 못생기고 말마저 심하게 더듬었다고 한다. 755년 안록산의 난을 피한 육우는 후에 제2의 고향인 호주(湖州) 장흥현에 정착했다. 차의 명산지인 호주에 정착한 육우는 차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는 한편 당대의 시인이자 차에 관해 풍부한 지식을 겸비한 비구승 교연(皎然)과 교분을 갖는다.

교연의 적극적인 권유에 육우는 28세 때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차에 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차경(茶經)의 초안을 마련하였고, 744년 마침내 그는 10여년 세월에 걸쳐 차경을 탈고하고, 804년 72세의 나이로 장흥에서 생을 마쳤다.

차경은 상, 중, 하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차에 대해 10가지 항목으로 구분하여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에서 10까지 각 장이 스토리로 이어져 이해하기 쉬우며, 사상과 철학이 담겨 있어 문학 작품으로도 높이 평가받는다. 그는 차(茶)를 1. 차(茶), 2. 가(檟), 3. 설(蔎), 4. 명(茗), 5. 천(荈)이라 했다.

주자학의 본산, 무이산(武夷山)

산동성 태산에서 공자(孔子)가 나왔다면, 복건성 무이산에서 주자(朱子)선생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50년간이나 살았으며, 그의 아버지 주송(朱松)선생은 고향이 강서성 무원인데, 복건성 우계(尤溪)에서 벼슬을 하면서 주자 선생을 낳았다.

주씨는 원래 당나라시대 황건적으로 난으로 소주에서 안휘성 자양산 아래 흡주(歙州)로 이거하여 자양주씨(紫陽朱氏)로 불렸으나, 다시 무원으로 이거하였다. 신안주씨(新安朱氏)는 황산(黃山)을 휘주(徽州)로 불렀으며, 그 이전에 신안으로 불렀기 때문에 신안주씨로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 신안주씨는 주자선생의 증손인 주잠(朱潛)선생이 송나라가 망하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생겼다. 그는 어린이들을 위해 ‘권학시(勸學詩)’를 남겼다.

소년은 늙기는 쉬우나 학문은 이루기가 어렵나니,
짧은 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연못의 봄풀이이 깨어나기도 전에,
섬돌 앞에 오동나무는 이미 가을 소리를 낸다.

少年易路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 已秋聲

그는 무이구곡에서 ‘무이구곡가’를 지었다. 퇴계 이황 선생은 그것을 영향을 받아 ‘도산십이곡’, 율곡 이이 선생은 ‘고산구곡가’를 짓기도 하였다.

무이산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무이구곡을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2시간 동안 내려가는 것이다. 계곡마다 주자선생의 ‘무이구곡가’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내려 갈 때 수십 개의 뗏목이 떠내려가기 때문에 아주 장관이다.

1곡에서 9곡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9곡에서 1곡까지 내려가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1곡에 도착하면 무이궁이 있다. 이곳에는 무이산에 살았던 유명한 사람들이 모셔져 있다.

무이구곡(武夷九曲)은 청계구곡(淸溪九曲)이라고도 하는데, 36개의 봉우리와 37암(巖)
사이로 흐르며 계곡과 양안의 절벽은 복건 제일의 명승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산은 물이 없으면 수려하지 않고
물은 산이 없으면 맑지 못하다.
골짜기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가고,
봉우리 봉우리마다 물이 감아돈다.
山無水不秀 水無山不淸
曲曲山回轉 峯峯水抱流

무이산 위에 신선이 있어
산 아래 흐르는 물이 굽이굽이 맑은데,
명승지를 알고자 하거든
뱃노래를 한가로이 두세 번 들어보게나.
武夷山上有仙靈 山下寒流曲曲淸
欲識箇中奇絶處 櫂歌閑聽兩三聲

무이산에는 커다란 항아리 같은 바위들이 많으며, 옥녀봉, 쌍유봉, 대왕봉 등 다양한 모양이 즐비하다. 천유봉은 천 길의 절벽 위에 암봉이 우뚝 솟은 무이산 최고의 절경으로 오르는 888계단으로 30여분이면 오를 수 있다.

예부터 ‘천유봉을 무이산 제일의 경치’라 했고, ‘천유봉에 오르지 않으면 무이산을 구경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실같이 이어진 좁을 길을 올라 정상에 이르면 수많은 봉우리가 내려다보이고, 무이구곡의 돌아드는 모습이 완연히 눈에 들어온다.

무이정사 바로 뒤 병풍처럼 생긴 봉우리가 감취 있다는 은병봉(隱屛峰)이 있고, 그 옆으로 죽순이 접해젔다는 접순봉(接笋峰)이 있다. 접순봉은 오르기 힘든 봉우리며, 그 사이에 수월정(水月亭)이 있다.

광양시 섬진강 주변의 매화마을 옆에 아름다운 정자인 수월정이 있는데, 무이산에도 있다. 무이산 수월정은 주자선생이 계신 곳이며, 광양 수월정은 수은 강항(姜沆)선생은 정유재란 때 일본에 잡혀가 4년간 포로로 지내면서 일본에 주자학을 전수시키고 돌아와서 수월정기와 시를 짖기도 하였다. 우연의 일치로는 대단한 곳이다.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산을 보려면 황산을 보고, 산봉우리를 보려면 장가계를 보고, 물을 보려면 계림을 보고, 물과 산을 보려면 무이산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무이산은 산과 물이 어울린 곳이다. 천유봉에서 강을 따라 뗏목 타고 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2018년 8월 2일
강원구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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