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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칼럼] 강원구박사의 중국여행
[강원구칼럼] 강원구박사의 중국여행
  • 박부길 기자
  • 승인 2018.02.26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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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封建)제도가 생긴 이유

중국에 여행하다보면 한 지역을 여행하는 것보다는 중국 전체 문화를 먼저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국 전체를 알고 각 지역을 여행하는 것이 중국을 이해하는 데 좋은 점이 많다.

옛날 중국의 부족 간의 전쟁은 상당히 잔혹할 정도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볼 때 약탈이야말로 창조적인 노동보다 쉽고, 영예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 어떤 것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며, 굳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즉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약탈을 했을 것이다.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룬 부족이 남들보다 빠르게 팽창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처음에는 부족 간의 전쟁 규모가 아직 크지 않기 때문에 승리한 쪽에서 패배한 쪽을 완전히 살육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규모가 거대해질 경우 모두를 죽이고, 불태우고, 빼앗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봉건(封建) 제도가 생겨난 것이다. 봉건은 사실 전쟁에 패배한 쪽의 토지와 백성을 처분하는 일이다. 토지는 원래 움직일 수 없는 것이며, 사람 또한 완전히 죽일 수 없는 것이어서 각기 그 자리에 놔두는 것을 연구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토지의 영역과 그곳의 수장(首長)이었다. 새롭게 영역을 확정짓는 것이 봉토(封土)의 ‘봉(封)’이고, 새로운 수장을 파견하는 세우는 것을 ‘건(建)’이라 한다. 주(周)나라에서 파견한 수장은 진(陳)나라처럼 선대의 후예(後裔)일 수도 있고, 채(蔡)나라처럼 자신의 친족일 수도 있고, 초(楚)나라처럼 참전한 동맹국일 수도 있고, 제(齊)나라처럼 이성(異姓)일 수도 있다.

중화(中華)라는 세계
그들은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해 스스로를 중화(中華)라 부르며, 이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등으로 불러 상대적으로 이민족을 가볍게 보았다. 중국이 문화를 이루는 근간의 하나로 ‘세계의 중심이 되고, 세계는 중국으로, 중국은 세계로 통한다’는 것이 중화사상의 근본이다.

중국이 ‘천하(天下)’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은 온 세상을 뜻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중국을 지칭하는 말이다. 공자가 태산에 올라 ‘등태산이소

천하(登泰山而小天下: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좁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천하의 주인으로 여긴 중국인들은 우월한 문명을 가진 ‘중화’와 그렇지 못한 주변의 나라로 구별한다. ‘중화’는 ‘문명의 중심’이란 뜻이다.

중국은 대체로 자신의 주변에 대해 좋은 이름을 주는 데 인색하기도 했다. 몽고(蒙古)에 대해서는 뭔가 뒤집어써서 앞뒤를 못 가린다는 뜻의 몽(蒙)이라는 글자를 쓴다거나, 날래고 잽싸 싸움에 능했던 훈족에 대해서는 언뜻 보기에도 어감이 좋지 않은 흉노(匈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고려(高麗)나 조선(朝鮮)을 부르게 된 것은 한국이 중국의 순망치한(脣亡齒寒)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온 하늘 아래에 황제의 땅이 아닌 것이 없다’ 는 이야기는 2천여 년간 중국인의 생각 속에서 전해졌고, 이는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봉건적 황제는 비록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사라졌지만, 중국인의 마음속에는 항상 존재하고 있다. 1911년 신해혁명 후 새 공화국의 이름을 ‘중화민국’ 이란 이름이 첫 공식 국호를 사용하였다. ‘중화’ 를 중국 민족의 이름으로 쓴 것이다. 중국인은 서양에 의해 민족의식에 눈떴지만 민족 이름을 스스로 ‘중화’ 라 짓는 데서 그들의 민족주의가 과거의 ‘중화주의’를 아주 벗어나지 못했음을 엿 볼 수 있다. ‘천하의 주인’ 은 아니라도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존심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에 비하면 그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대륙적인 기질과 대국적 기질도 갖고 있다. 중국은 외래문화나 이민족을 우월한 민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무조건 배척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점차 그것을 중국화 시켜 나간다.

주변 민족이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침략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준다. 한국과 중국은 주변의 다른 나라보다 친밀히 지냈으며, 조선시대에 우리는 스스로 소중화(小中華)라는 말을 하였다. 중국과 한국 1:1로 싸운 것은 고구려와 수나라 시대이다.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에 의해 싸웠으며, 요(遼)나라는 거란족, 원(元)나라는 몽고족, 청(淸)나라는 만주족으로 중국에서도 이민족으로 보는 국가이지 중국이 아니었으며, 중국도 이들에게 많은 수난을 받았다. 손문(孫文)선생도 만주족을 쳐부수자는 기치를 걸고 일어났다.

인내심(忍耐心)을 키우는 나라
중국인들의 참을성을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감탄한 것은 청나라 말기 중국을 방문한 ‘스미스’라는 선교사였는데, 그들의 강한 성격은 처첩(妻妾) 동거의 대가족주의에 의해 키워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사세(四世) 동당(同堂)이라 하여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에 이르기까지 한집에 사는 것을 매우 경사스러운 일로 여겼다. 고부 관계에다 첩이 한 다리 끼고, 시누이, 시동생이 있으며, 숙부, 조카 등 겹겹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처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운데서 인내심이 길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당서에는 구대(九代)가 한 집안에 동거하는 것으로 유명했던󰡐장공예열전󰡑이 실려 있다. 당 고종이 태산 가는 길에 직접 방문해 󰡐구대 동거󰡑의 비결을 물어보니 참을 인(忍)을 백여 자를 붙여 있었다고 한다. 중국이란 나라는 넓기 때문에 인내심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버스를 2시간이상 타면, 아주 지루하게 생각하지만, 중국에서 10시간 이내면 가까운 거리이며, 복잡한 기차 칸이라 일어서면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하루 동안 화장실 한번 가지 않고 참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데서 인내심이 길러지는 것이다.

백범 김구선생도 중국인들의 성격에 관한 글을 보면 중경(重慶)에서 폭격을 당할 때 중국의 국민성이 위대한 것을 깨달았다. 높고 큰 건물이 삽시간에 재가 되어도, 집주인들은 한편으로 가족 중 피살자를 매장하고, 다른 한편으로 생존자들은 불붙지 않은 나머지 기둥과 서까래를 모아 임시 가옥을 건설하였다. 그 일을 하는 중에 웃는 얼굴로, 비장한 빛을 보이지 않으며, 그들을 볼 때 이러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만일 우리 동포들이 저 지경을 당했다면 어떠할까? 화가 나느니 성이 나느니, 홧김에 술을 마신다, 성남 김에 싸움을 일으킨다하여, 소란만 일으키고 태만하지나 않을까” 라는 기록이 있다.

중국에는 그 동안 ‘총은 얼굴을 내미는 새를 쏜다’ 또는 ‘뾰족한 서까래가 먼저 썩는다’ 라는 말이 많다. 머리를 내밀지 않아야 살고, 썩지 않기 위해서는 뾰족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잘 나서지 않거니와 친절함에 익숙하지 않는 나라이다. 우리는 길에서 사고가 나면 모두가 합심해서 도와주지만, 중국인들은 잘못하다간 내가 큰일 난다는 생각에 잘 도와주지 않는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
그들은 생활에 끈질김을 볼 수 있다. 중국의 물건들은 큰 것은 크고 작은 것은 아주 작다. 미세한 세공술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들이 많다. 대만 고궁박물관에 상아구(象牙球)가 있다. 그 공 속에 아름다운 조각들이 17개가 있어 돌아가면서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세공품들은 2~3대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 많다.

조그만 살구씨 하나에 산수화 한 폭이 그려져 있고, 한쪽은 낚시질을 하고, 한 쪽은 장기를 뒤면서 이겼다고 껄껄대고, 한 쪽은 낙담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육안으로 볼 수가 없어 돋보기로만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칠보라든가 도자기는 중국의 뛰어난 작품이며, 유리병에 안에 산수화를 그리고, 향수나 아편을 넣어 양반들의 사치스런 향락에 빠져들게 한 것들도 많다. 만일 중국인들이 과학기술로 승화시켰다면, 아마도 중국이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중국인은 여유 있고 대륙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 중국의 자동차에는 ‘비상구’라는 글자가 없고 ‘태평문(太平門)’으로 되어 있다. 정말로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만일 불이 났다면, 서두르면 오히려 위험하지만 태평하게 나가면 전부가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정신을 만만디 정신이라 한다.

만만디 정신이란 빨리 하려고 하면 이루지 못한다.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말로 무엇이든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중국인의 대륙적인 정신은 양자강의 물 흐름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강서성의 구강시 심양루(潯陽樓)에서 넓고 여유 있게 흐르는 양자강을 바라보면 과연 중국인의 국민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2018년 2월 25일
강원구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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